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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우 님께서 남기신 글 (2009-01-11 23:17:51, Hit : 1196)
20020219 - 일본 여행


2001. 2. 19 - 27 일본

2. 19(월)

한국청년초청사업, 이것이 이번 일본 방문의 계기였다. 일본의 모라로지 연구회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한국의 젊은 모라로지 회원들을 불러 교육 및 관광을 시키는 그러한 행사였다. 나는 어찌저찌 기회가 되어 주환 녀석과 함께 가게 되었다. 좀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일본 비자 받고하는 정신 없는 며칠을 보낸후에 드디어 출발일인 2월 19일, 을지로에서 박수남상(주환이의 외삼촌이다..) 및 가족들을 만나서 함께 김포공항으로 갔다. 김포공항에서 마중나오신 이사장님과 함께가는 일행들를 만나 인사하고 출국수속을 한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보는 것이라(-_-) 어리버리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사실 병무수속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일찍 와야한다고 하더니, 수속이 작년에 없어졌다고 해서 티켓팅 빼고는 별로 할게 없었다. 1시 35분에 비행기에 올랐는데, 난 버스처럼 사람 다 타면 올라가는줄 알았는데 비행기 이륙하는데 30분은 걸리더군..

이번 일본방문은 총 7명이다. 나와 박수남상, 그리고 주환,영신형,진우,영권이형,윤주누나 이렇게.. 뭐 처음 타보는 비행기의 느낌은 꽤 괜찮았다. 뭔가 부웅~~ 하더니 이미 떠있었다. JAL기라 그런지 대부분 일본인인듯 싶었다. 옆쪽에 일본 아가씨 2명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하이','하이'하는게 귀엽다. 기내식으로 초밥 먹은후 스튜어디스가 와서 뭐라고 묻는다. 뭔지 몰라서 무조건 "하이"했더니 아사히 맥주를 주더라. 나중의 옆의 박수남상에게 여쭤보니 yes-no 질문이 아닌, "음료는 뭘 먹을래?" "맥주로 할래?" "아사히 맥주로 할래? 기린 맥주로 할래?"의 3가지 질문이었다는 -_-;;;

어쨌건간 만족스런 결과였고, 뭐 하나는 제대로 대답했으니.... 어쨌건 이륙하고 대략 2시간쯤 지나니 일본 나리따 공항에 도착한다. 일본 모라로지측에서 이미 몇 명이 마중나와 있다. 오하시센세와 모리타상. 이 두사람이 앞으로 우리의 일정을 책임지고 필요한걸 챙겨주실 분이란다. 두분과 인사하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우리나라 사람도 그렇지만, 이사람들은 사진찍는걸 아주 좋아한다. 또한 한국청년초청사업도 공식적인 행사라 사진을 남길 필요가 있는것 같긴 했다.) 차를 타고 공항을 나오는데 꽤나 오래 간다. 가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7시쯤야 미나미 가시와에 있는 모라로지의 호텔(캠퍼스프라자)에 도착한다. 여기는 미나미 가시와의 레이타쿠 대학, 모라로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이다. 실은 한국에서는 처음 들어본 단체인데, 여기서는 수십만명이 회원으로 있다고 한다.

짐을 풀 틈도 없이 바로 회식장소로 움직인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군. 회식장소에 들어가는데 엄청 당황했다. 우리일행 7명쯤이 들어가는데 이미 그곳에는 한 30여명(대부분이 나이 상당히 많으신 분들이었다.)이 일어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가자 다들 박수를 쳐서 반기는.. 조금은 뻘쭘한.. 어쨌건 앉아서(분위기가 다 무릅꿇고 앉는 분위기였다. 우리역시 쫄아서..) 하나씩 자기 소개를 하는데 일본어로 하란다. 아무말 못듣고 온 우린 다들 당황하고, 급히 회화책을 펼쳐 한 3-4마디쯤 하고 앉았다. “곰방와, 하지메마시떼, 와따시와 다이각세데스 소시떼 생꼬와 컴퓨터 싸이언스 데스, 니혼와 곤까이 하지메떼데스, 도죠 요루시꾸 오네가이시마스..”(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대학생이고 전공은 컴퓨터과학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이말만 죽어라 외웠다. 돌아오는 그날까지.. 우리 일행은 다 일본이 처음이고 박수남상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본어를 못했다. 또한 일본사람들은 다 한국말을 못했다. 결국 의사소통의 대부분은 바디랭귀지와 영어로 이루어졌다. 대강의 의사소통은 되었으나, 주변 사람들과 나름대로 자세히 이것저것 얘기하고 싶었으나 결국 언어적인 문제로 몇마디 못하고 9시쯤 자리를 마쳤다.(물론 사진도 찍었다.) 호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귀가한다.




그제서야 우린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내일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은후 집에 전화한통 때려주고 잠자리에 들다. 숙소는 레이타쿠 학원 안의 캠퍼스프라자라는 호텔인데 그라지 크지는 않지만 상당히 깨끗하고 아담한 곳이었다. 화장실엔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또한 차문화 때문인지 방마다 물끓이는 기계가 있어 차를 끓여 먹을수 있게 되어있다. 오짜(녹차)는 한국것보다는 약간 진하고 좀 텁텁한 느낌이 있지만 먹을만 했다. 피곤했던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처음오는 일본, 처음받은 인상은 꽤나 깨끗하고 조용하며 아주 친절하면서도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경이 아니라 그런지. 그리고 아파트가 거의 없고 거의 작은 집들이 조밀조밀 붙어있고 집마다 차 한대 겨우 주차할만한 주차장을 가지고 있다. 자전거도 아주 많았고.

2. 20(화)

6시에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졌다. 영신이 형이 깨운다.. 이크. 얼른 씻고 히로이키 박사님의 묘로 이동했다. 히로이키 박사님이 이 모라로지라는 단체를 만든 분이다.

학교 주변이 워낙 산책, 조깅하기도 좋은 환경이었고 실제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묘로 가는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이미 왔다간 흔적도 남아있었다. 돌아가신지 60년이 넘었는데 아직 모두의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 박사님은 어떤 분이셨나. 돌아와보니, 아침식사 시간. 와쇼쿠(和食)와 양식,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하면서 와쇼쿠, 즉 재패니즈 스타일 선택, 나또만 제외하고는 생각보다는 깔끔하고 먹을만 했다.

그리고 연구소의 조회를 참석하고는 히로이키 박물관에서 설명을 듣다. 그리고는 1시간 반동안 모라로지라는 학문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다. 최고도덕을 통해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그리고 거기에 5가지 방법이 있다는. 자아몰각과 자비실현의 원리를 직접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기에, 그렇게 스스로의 품성을 높이려고 돌아가실 때까지 노력한 분이기에 모두의 기억에 그리도 생생히 남아있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이어가려는 것이 아닐까. 모라로지라는 단체는 사실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본 곳인데 일본에서는 상당히 큰 단체이고 레이타쿠 학원에 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유치원까지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놀랐다. 이쯤 하여 깨달은 것이 우리는 여행을 온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으러 왔다는 것. 본격적으로 거의 쉬는시간도 없이 빡빡한 일정대로 왔다갔다 했다. 점심은 양식으로 먹고 오후에는 레이타쿠 대학생들과 축구를 했다. 여자들 포함해서 설렁설렁(여자가 골넣으면 2점 인정).. 실은 군대축구식으로 열심히 뛰어야 하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무리하게 뛰지는 않고 전후반 합쳐서 한 30분 정도. 근데, 이거 뛰면서도 준비운동에 뭐에 할건 다하더라. ㅋ 게임후에 그 친구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며 다과를 했는데, 확실히 대화는 언어로 하는것이 아닌듯. 말은 안통해도 충분히 뜻이 통하더라. 이때 이후로 그나마 일본 사람들하고 말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졌던것 같다. 명함은 100장정도 가지고 왔는데, 여기저기 돌리다 보니 일본에서 다쓰고 왔다.

저녘을 먹고 1시간여쯤 자유시간이 있어서 동문쪽으로 해서 바깥으로 구경나갔었다. 큰길로 가다가 골목으로 들어갔는데 아파트는 거의 없고 거의 단독주택, 그것도 그 좁은집에서 어떻게 그렇게 지어났는지 몇평 안되는 땅에다가 주차장에 집에다가 정원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런집이 오밀조밀 모여있고, 그리고 지나가는데 자전거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계속 적응이 안되는 것은 길이 우리나라랑 반대로 되어있다. 상당히 헛갈린다. 큰 마트가 하나 있어서 들어가 봤는데 물건값은 한국보다 꽤 비싼듯 했다. 뿌듯했던건 진로소주(500cc)가 한병에 750엔(8000원).. 어디간들 술가격부터 살펴본다 -_-;;; 숙소로 돌아와보니 잠시후 모리타상이 와서 일정 설명을 해준다. 내일은 이곳을 떠나 다니가와로 간다고 짐을 다 싸놓고 준비하란다. 영권이형 방 가서 맥주 한캔씩 하고 잠이 들었다.

저녘쯤 한국에 전화를 했는데 대강 1000엔에 7분에서 8분정도 나온다. 친구 녀석에게 전화했는데 수강신청도 잘 안되있고 등록금도 안내져 있어서 잠시 당황했다. But, 어짜피 어쩔수 없는 일이니 확실히 부탁하고 생각없이 놀기로 했다.


2. 21(수)

역시 집밖으로 나오면 잠이 없어진다. 6시도 안되어서 일어났다. 간단하게 샤워하고 짐챙겨놓고는 잠깐 산책을 나갔다. 중간에 2명쯤을 만났는데 무심코 지나치면서도 "오하요~~"라고 아침인사를 하는것이 친절인가? 습관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둘중 어느쪽이라도 인사 안하는 것보다는 낫단 결론을 내렸다. 어쨌건 아침을 먹고는 좀 늦어서 8시 30분쯤 연구소를 나왔다. 미나미가시와역으로 와서 마쯔도역과 우에노역에서 갈아타서 미나카미역(水上)에 도착했다. 기차를 한 3번은 탄것같다 신간센도 한번 타고, 우리나라 전철처럼 역안에서 갈아타는 것과는 좀 다른듯 싶었다. 기차 종류도 쾌속이니 보통이니 몇가지 종류가 있었구.. 어쨌건 미나카미역에서 차를 타고 간곳은 다니가와(谷川) 연구소.



북쪽으로 올라오는지라, 주변 환경이 점점 하얘진다. 이 지역은 눈이 워낙 많이와 2m씩 쌓이기도 하는 지역, 온천지역인지라 오르막 도로에는 중앙선에서 분수모양으로 온천물이 나와 눈을 녹이고, 지붕에도 온천수 열선이 깔려있어, 사고를 막아준다. 연구소는 눈도 워낙 많고,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이쪽에 산다면 눈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거란 생각도 들지만.. -_-; 방에다가 짐을 풀고는 연구소 센터장 와타나베 센세의 설명을 들었다. 졸렸다 -_-;; 비디오를 시청하고는 레이타쿠깡과 대혈(오하나)기념관을 견학하며, 히로이키 박사의 마지막까지 바래지 않는 정신과 그분을 이어나간 여러 분들의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 참치와 김치로 된 맛있는 저녘을 먹고는 온천을 하러 갔다. 이 지방이 온천지방이라(오하나(大穴)도 온천임) 여기저기 지천에 깔린게 온천이었다. 온천은 노천온천.. 우리는 대나무잔에 정종 한잔씩 받아들고 노천 온천에 들어갔다. 아쉽게도 혼탕은 아니었다. 혼탕은 가족탕밖에 없단다 -_-

온천물은 뜨끈한데 손만 뻗으면 바깥에는 눈이 쌓여있다. 멋지다, 또한 위치가 꽤 높은 곳이어서 온천에서 멋진 설경이 다 보이며 하늘에는 별이 반짝인다. 그 경치에다 몸은 뜨거운데 정종 한잔하니까 술기운이 살살 올라온다. 노천온천 부럽다. 한시간정도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나와서는 다니가와 연구소 학생들과 교류의 시간이 있었다





여기 학생들은 대략 열댓명 정도, 확실히 젊은 애들끼리 놀아야 재밌지. 여기서 이주환상이 반한 시라키 아야상이 등장. 사실 귀엽긴 하다, ㅋㅋ 하이. 또 이래저래 사진찍고.. 일본인들은 사진찍는걸 진짜 좋아하네. 서로 자기소개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보니 금방 9시, 이시간쯤이 대충 정리할 시간이다. 이젠 좀 감잡았다. 우리 방으로 돌아와서 놀다가 세탁기 있는것 보고는 빨래했다. 언제 또 할수 있을지 모르니까..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느덧 3일이다. 낼은 스키타러 간단다, 기대해 보도록 하자.


2. 22(목)


아침에 일어나서 또 아침온천 후에 아침을 먹었다. 밥 나름대로 맛짐. 역시, 나또 빼고. -_- 온천이 바로 앞에 널려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도때도 없이 온천이다. 오늘은 스키장을 가기로 하여 바로 이동했다. 미나카미 어쩌구 하는 스키장이란다. 어제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가타가나를 확실하게 외어 놨더니 어느정도 간판따위는 읽을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 해도 어디야.





스키와 스키복, 장갑을 빌려서 스키를 타는데 이쪽은 스키가 거의 국민스포츠 수준이어서 상당히 가격이 싸더라, 거의 우리나라랑 비슷하거나 더 싼수준.. 일본의 물가를 고려할때 그야말로 껌값이다. 하루 타는데 라면 5-6그릇 가격정도 했으니.. 어쨌건, 문제는 스키를 처음 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지도 못하다가 뒤뚱뒤뚱 걸어서 어찌어찌 리프트까지 갔다. 그리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막상 아무 생각없이 리프트를 타고 나니까 생각나는게,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내려가지.... 라는 생각이었다. 안타깝게도 리프트는 끝도 없이 올라갔다. 올라가는데 10분 걸렸다. 참고로 3,40번쯤 넘어지며 내려오는데는 1시간 반쯤 걸렸다. 넘어지고, 일어서다가 넘어지고, 좀 가다가 또 넘어지고.... 아야상을 비롯한 일본사람들은 다들(이래봐야 3명이었다.) 스키를 정말 잘탔다. 거의 날라다니는 수준.. 한명이 한명씩 붙어서 코치해줬다. 나때문에 아야상이 고생좀 했다 -_- 이때 내려온 걸 적자면 몇장을 나올것 같다. 어쨌건 그래도 좀 요령을 터득해서 오후에 타러 올라갔을때는 5분만에 내려왔다. 그리고는 2시부터는 중급자코스 가서 탔다 -.-V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초급코스같은데는 그냥 한번에 쭉 내려오는데 재미가 장난이 아니었다. 왜 사람들이 스키를 타러 가는지 이해가 되는듯.. 한 3시정도까지 스키타고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데 다들 파김치가 되어가지구.... 돌아와서 보니 목삐끗했고, 발목 삐끗에 양손가락도 삐고 여기저기 멍든데가 5-6군데, 정말 무슨 전쟁나갔다 온 사람 같았다만 재밌었으니 다행이다.

온천가서 좀 씻고 쉬다가 센터의 중간보스(이름이 가베상이었나 그랬던것 같다.)와 함께 저녘을 먹으러 갔다. 한국 음식점으로 불고기나 곱창종류, 오징어조개, 레바(간)등으로 식사를 하였다. 식당에는 한국 진로도 있었다, 버뜨, 비쌌다. 우린 비싼 한국소주보다 싼 일본맥주 먹었다.^^ 정말 너무 잘 얻어먹어 미안할 정도였음. 주변에서 사진 몇장 찍고는 정말로 피곤해서 집에 전화한통 하고는 바로 죽은듯이 잠들었다. 내일 일어나면 고생할것 같다. 너무 편하고 재미있게 다니다보니 어느덧 일정도 절반이 지났다.


2. 23(금)
오늘은 다시 이동하는날, 짐은 어제 이미 챙겨 두었고, 아침후에 센터장님과 이런저런 느낌 얘기하다가 엽서와 방울까지 선물로 받고는 센터를 나섰다. 차타고 떠나는데 센터 사람들 다 나와서 안보일때까지 손흔들어 주었다. 고작 이틀 봤는데도 또 이사람들하고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네.

우린 상모고원 역에서 신간센 갈아 타고 동경 우에노 역으로 갔다. 이곳에서 또다시 접선. 왠지 우리가 무슨 짐처럼 여기저기 넘겨진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쨌건 우리와 계속 동행하던 오하시 센세는 우리 일행을 여기서 처음 만난 아베 히로구 센세에게 넘겨주었다. 참고로 박수남상도 교육가 있어서 우리 일행중 일본어 할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도 아베상이 영어를 잘하긴 했지만.... 어쨌건 내일까지는 이분의 안내로 다녀야 한다. 어찌어찌 영어로 대화하면서 우리는 아사쿠사 역으로 이동해서 가방을 역의 락커에 넣어두고는 나카무라상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냥 우린 따라서 밥집 들어갔는데 그집 주인도 모라로지 분이셨다.



점심 후에는 우릴 안내해줄 두 아가씨 아베 히로코상과 에가와 가나에 등장, 그후로 우리는 계속 조용히 따라만 다녔다. 용전거리(카미나리몬? 일어로 뭔지 모르겠음. 어쨌건 커다란 등같은거 있는 곳이네요.) 가서 무슨 절 구경도 하고 아픈거 닛게 해준다는 연기도 몸에 씌어(?) 주고 선물좀 산 다음에 아키하바라로 갔다. 아키하바라는 용산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훨씬 썰렁했다. 뭐 용산을 워낙 자주가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 신기한게 한두개씩 있고 플스가 널려있다는게 차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용산쪽이 장사하는 분위기가 나는듯 하다. 워크맨 하나를 살까 고민하다가 한국하고 별 차이도 안나고 해서 말았다.




결국 대충 둘러보고 또 하라주쿠로 이동, 여기서는 각자 떨어져서 보다가 저녘시간에 만나기로 하였다. 중심거리는 명동과 비슷한 분위기에 주로 옷가게들이었다. 뭔가 신기한 파격적인 느낌이 드는 옷이 좀 있었으니 확실히 겨울이라 그런지 거의 일상적인 옷들이었다. 한참 돌다가 저쪽에서 서점발견, 이 서점은 만화책 도매 비슷한 곳으로 만화책들을 한권에 200엔 정도로 팔았다. 물론 새거(재고인듯 하다) 으음.. 김전일하고 GTO하고 사왔다. 16권 1050엔, 뭐 집에 있는 만화책으로 사서 일본어공부나 해보자는 생각이었으나 지금 몇년째 책꽂이에서 내 손길 한번 안닿아보고 꽂혀있다. 뭐 별로 산것은 없지만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우에노 쪽으로 이동하여 밥먹으러 갔다. 으음.. 여기서도 사람들 근 20명 정도에다가 우리 6명, 뭐 이젠 이런것도 익숙해졌고, 어느정도 생활일본어 문장 50개쯤 외어놓았기 때문에 적당히 영어랑 섞어서 얘기하며 근 3시간에 걸친 저녘식사를 했다. 이 분들은 거의 한 40-50대쯤 되는 사람들로서 요즈음 일본에서

모라로지 하는 사람들이, 특히 젊은 나이대 사람들이, 없는걸 아쉬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이 우리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다. 사실 여기 오기까지는 모라로지라는 것도 제대로 몰랐는데 약간 민망하긴 했다. 오늘은 홈스테이 하는 날로 일본 모라로지 회원들 여러분이 우리를 2명씩 맡아서 재워주신단다. 하여 식사를 끝내고는 나랑 영신이형이랑 같은 조로 아베상집으로 향했다. 아베상은 큰아들은 브라질에 가있고, 사모님은 영국에 가있다는 -_-;;, 집안 구경을 하고 아베상과 이런저런 이야기후 다다미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난생 처음(일본이 처음이니 처음인게 당연하겠군) 다다미.  뜨끈하게 지지고 자는 온돌방에 익숙해져서 좀 춥기는 했지만, 나름 편안히 잠들었다. 처음에는 방안에 히터가 있는게 어색했는데 온돌이 아닌 다다미에서 히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코타쯔(상 밑에 전열기구)라는게 괜히 나온게 아니더군.. 펜세트도 선물로 받다. 우리쪽에선 드릴게 별로 없어서. 그나마 미리 준비해간 김세트(일본 사람들이 김을 아주 좋아한다.)하고 이것저것 드림.


2. 24(토)
아침부터 비가 왔다. 아침에 씻는데 역시 일본사람들이 목욕을 좋아해서 그런지 다들 욕조에 물을 채워놓고 있는다. 이집 역시 욕조에 물 가득에 전열기구로 계속 따뜻한물을 유지하고 식지 말라고 뚜껑으로 덮어놨다. 그리고 뭔가 풀어서 물이 녹색이라는.... 옆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는 다른 곳에서 홈스테이 하는 일행들을 만나, 오짜를 마시며 간만에 여유로운 오전를 보냈다. 원래 오전에도 동경 견학이었는데 비로인해 그냥 나까무라상, 아베상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보냈다. 비오는날 빗소리 들으며 따뜻한 오짜 마시며 좋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기분, 한국에서도 충분히 즐거운 일인데 일본에서라면야.. 금방 오전이 지나가, 아베상에게 맛난 불고기를 얻어먹고는 가시와 역의 연구소로 돌아갔다.

오자마자 폴라이트 복장으로 갈아입고 이사장과의 면담, 이사장님이라고 하여 쫄았으나 생각보다 젊고 재미있고 생각을 넓게 가지시는 분이라 즐겁게 대화를 나눌수 있었다. 옆에는 통역이 있었지만 가끔 일본어 섞어서 떠듬떠듬 질문하고 했다. 그래도 계속 일본어를 쓸려고 하니까 조금씩이나마 느는게 느껴진다. 여기서 나이든(?) 사람은 쉬러가고 우리는 마쯔다 센세를 졸라서(라기 보다는 센세가 안내를 자청했다.) 가시와 역으로 놀러갔다. 가시와 역에서 백화점과 서점들을 구경하고는 그 옥상에 있는 회전 카페가서 가시와 시내를 를 구경하며 차한잔. 그러면서 오늘밤에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이 근 7,80명쯤 될것 같아 한번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돌아와서는 포기했다. 하루만에 두배가 되서. T.T

오늘은 모라로지 청년수강자 모임 참가. 그곳 학생식당이 가운데가 뻥뚤려 있고 테이블 배열해서 가든파티 분위기, 그리고 일본와서 지금까지 만난만큼의 사람을 만났다. 정신없이 인사하고 얘기하고 서로 이름 적어주고, 3X3 네모에다가 이름 하나씩 적어서 빙고게임을 했는데 딱 걸려서 밥풀 안붙는 주걱 받았다 -.-V 뭐 한손에는 접시와 포크 다른 손에는 술잔 하나씩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지금까지도 재미있었지만 거의 만나던 사람들이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번엔 거의 나이대도 비슷하고 해서 좀 정신없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이날 한국에서 가지고 온 명함은 거의 다 없어졌다 T.T 그리고 이미 언급했지만 일어가 안되면 영어로, 영어가 안되면 바디랭귀지로라도 의사소통이 되는데 또한번 놀랐다. 사람이 워낙 많아 조금 긴장하였지만, 료(숙소)로 옮겨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2차까지 그들과 생각을 비교해 볼 좋은 기회였다. 나라가 다르고 전통이 다르더라도 비슷한 또래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일본 사람은 술 적당히 먹는단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뭐 나도 나름 나름대로 한국의 원샷문화를 알리는데 힘썼지만.. 근데 그리 놀던 사람들이다 그 담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체조하는건 쇼킹했다.


2. 25(일)
몇시간 못자고 6시쯤 일어났다. 갑자기 왠 국민체조(?) 분위기에 우리도 말려 같이 국민체조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쨌건 이 사람들 대충 마신것도 아니고 같이 열심히 먹어놓고 다들 쌩쌩한 분위기여서 피곤한척도 못하고 고생했다. 참배 겸 산책후, 몇시간 전까지 먹던 술기운이 남아 아침도 대강대강, 샤워도 대강대강 하고 토의장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간단히 21세기의 도덕을 말한다란 주제로 세미나 비슷한 것을 하고는 한국 사람들끼리 무슨 연극을 하란다. 어제 휴유증으로 몸상태도 말이 아닌데. -_-;; 그래서 "한국의 경로사상"이란 주제로 3분간 생각해서 10분간 준비한 다음 5분동안 연극했다. 예절과 경로사상해 대한 이야기를 대충 한글로 정리하기는 했으되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낭패. 결국 어찌어찌하여 박수남상이 그대로 일본어로 번역해서 그나마 제일 낫다는 이유로 나는 뜻도 모르는 말을 그대로 읽어버리는 걸로, 그나마 히라가나, 가타가나 익혀둔것이 다행이다(일부는 한글로 독음을 적어놓았지만. ㅋ). 나름대로(?)는 성공적이었다. 거의 알아듣기 힘들었을텐데도 이해

해준 여러분들의 배려가 사뭇 고마웠다. 우리는 어떻게 대충 넘어갔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일본 여자애 하나가 와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감동했다고 눈물을 흘리는 엄한 일도 있었다 -_-;;

중간에 밴또를 먹은후 알아듣지도 못하는 청년지부별 설명회와 청년모임에 대한 감상, 결의등이 계속 되다가 3시 넘어서야 행사가 끝이 났다. 오늘은 2차 홈스테이, 어제 함께 가시와역에 갔었던 마쯔다 센세가 초청해주셨다. 오늘은 진우랑 멤버. 짐챙기고 나와 보니, 이미 마쯔다 센세가 가족들과 함께 와있었다. 센세는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다행이 영어를 아주 잘하신다. 적어도 말은 통하니 다행. 큰딸은 기숙사에 있구 두 아들과 사모님이 반겨주신다.





그집에서 집안 구경을 하고(한쪽에 마쯔리 인형이 있다), 어제 이미 꽤 친해져 있는 상태고 센세가 한국어 교본을 들고 가르쳐 달라고 하는 가운데 금방 화기애애해짐. 실은 이보다, 마사시, 미네코(두아들)와 함께 슈퍼마리오를 한것이.. ㅋㅋ 함께 이런저런 모양으로 만두 빚어가지고 만두 쪄먹으면서 아이들과 오셀로, 오목등 게임하며 놀았다. 둘째가 정말 귀엽다. 아이들은 일찍 잠에 들고 센세와 이런저런 한국과 일본의 차이, 한국어, 일본어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10시 30분 잘시간이다. 마쯔다상은 푸근한 외모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잠자리의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다다미방은 2번째라 그런지 꽤나 익숙해졌다. ㅋ 어제 못자서 그런지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2. 26(월)
지금까지 모라로지에서의 대강의 일정을 거의 마치고 오늘이 실제적으로 마지막 날이다. 내일 귀국하니까. 약간 느즈막하게 7시 반쯤 일어나서(다다미여서 꽤나 추웠다. 온돌이 그립구려) 박사님 묘에 참배하고(위에 어디선가 말한, 박사님을 존경해서 아직도 매일 참배한다는 사람중의 한명이 마쯔다 센세였다.) 로비에서 모였다.






오늘은 전반적인 견학 일정인데 마땅히 잡힌것도 없고 또 우리가 도쿄를 보고 싶다고 하여 동경일대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여기서 우리를 안내해줄 사람들 등장(늘 함께 다니던 모리타상, 다니구찌상과 함께 히로시상과 카와상, 히라이상 등장), 우리 7명까지 하여 대일생은 동경으로 향했다. 마쯔도, 우에노서 갈아타고 田可역에서 내려 도쿄타워로 슬슬 걸어감, 사실 서울타워와 크게 틀릴건 없는듯, 뼈대가 철골로 만들어진게 쫌 특이하긴 했지만, 난 높은곳을 별로 안좋아하다 보니까 그다지.... 어쨌건 333미터(숫자가 특이해서 아직도 외우고 있다. 기억이 맞다면 에펠탑보다 몇미터 높게 지은거라고 했었던가?) 높이에서 본 동경은 볼만했다. 밤에 와서 봤어도 멋있었을것 같지만 여튼 150미터 전망대에 올라보니 주변이 한눈에 보인다. 타워 전망대 한쪽은 바닥이 유리로 되있어서 확 올라오는 소름을 실감할수 있다. 지하에는 다스베이더 상도 있고 좋다. 내 스타일이야. ㅋㅋ 기념품에서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좀 보고 길상사(죠죠지)로 이동.

원래 한국에서도 다닐때 절을 꽤 많이 다니는 편인데 우리나라의 절과 일본의 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 절은 보통 산속같은 수도하기 좋은 곳에 위치하는데(몇개절은 제외지만.) 일본에서는 도심에 위치하며, 약간(꽤?) 시끄러운 편이며 불교에 여러가지 영향이 섞인듯한 느낌이 든다. 1엔짜리 던지면서 소원 비는것도 그렇고, 몸에 연기를 쬐는것도 그렇고 어쨌건 이 길상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관련이 있다는 절..(사실 일본 다녀온지 꽤 오랜만에 쓰는 거라, 뭐가뭔지 기억이 날리가 없다.) 대충 일본의 분위기를 느껴볼수 있었다. 그리고는 동경역 쪽으로 가서 라멩(라면)을 먹었다. 일본사람들이 라면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돌아다니는 라면집마다 사람이 꽉 차있어서 자리 잡기 힘들었다. 뭐가뭔지는 모르지만 뼈다귀를 72시간 고아서 만든 국물로 끓인 라면이라던가.. 으윽.. 비린내가 장난 아니었다. 한번 시도했다 제대로 실패.



다음 간곳은 고쿄(황궁), 물론 당연히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1년에 1번인가 2번인가 특정한 날에는 황궁을 공개하는 경우도 있단다. 결국 고쿄의 건물들을 바깥의 호수 밖에서 구경만 하고 사진 몇장 찍고는 우리는 다시 신주쿠로 이동, 이쪽은 분위기가 꼭 서울의 명동과 비슷한 분위기, 여기저기 백화점 만땅이구, 주로 많은게 또 핸드폰 가게.. 이곳에도 있는 스타벅스 가서 커피 한잔 하고는 면세점을 찾아 헤멨다. 실제 우리가 선물을 살수 있는 거의 마지막 곳이 아닌가. 어쨌건간 이러다가 결국 암것도 안샀다. 그냥 이래저래 구경만 하고 일본서 사나 울나라서 사나 거기서 거기구나. 하는 생각이나 하다 왔다. 일본향이 나는 거리 구경좀 하고, 흩어져서 잠시 보고 하다가 조금 늦어져서 예정보다 좀 늦게 원래 연구소로 돌아왔는데 환송회가 준비되어 있다는 -_- 김풀기도 전에 바로 환송회장으로 이동.




생각했던데로 근 40분 정도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들이 들어가자 박수치는 뷔위기, 홈스테이 갔던 집 가족들하고 연구소에 계신분들하고, 또 한국 사람들 돌아가는 마지막 날이라고 테이블마다 한명씩 붙어서 김치찌게 끓여먹기로 했다. 남자건 여자건 한국사람이면 김치찌게를 끓일수 있을거라라는건 어디서 나온 생각인지.. 어쨌건 우리 테이블엔 한국사람 나 하나에 일본사람 5명, 어쨌건 윤주누나의 약간의 도움을 받아 내가 끓였으니 오늘의 찌개중 가장 맛있다른 평가를 받았다. 다른 테이블에서 얻으러 오기도 하고 그랬다. 뭐 가쫑상이 얼마전에 한국에서 돌아올때 사왔다는 백세주를 먹으며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걸 실감도 하구, 사람들과 헤어지는게 아쉽기도 하고. 서로 마지막 느낌과 감흥을 이야기하며 다음번 만날날을 기약하며 역시 사진을 찍고 자리를 마쳤다. 환송회를 마치고는 또 여러분이 이것저것 선물까지 준비해 주셔서, 한국에서 간단한 선물이라도 좀 챙겨올걸 하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12시쯤 잘려는데 막상 일본에서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하니 잠도 안오고 해서 이런저런것 글좀 적고 주환이랑 놀다가 좀 느지막하게 잠들었다.


2. 27(일)



결국 마지막 날이다. 6시쯤 일찌감치 일어나 나오는데, 새벽부터 마중하러 나온 많은 사람들.. 정말 좋은 분들이다. 사람들 한명한명과 인사하고 마지막으로 같이 사진찍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모리타상과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계속 함께 다니던 다니구찌상한테 전화가 와서 실수로 늦잠을 자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참고로 그때 시간이 7시, 절대 늦은 시간은 아니었였다.) 알아들은 건 아니고 그런듯한 말투였다. 얼굴을 보면서 말하면 어느정도 영어와 일본어가 반반씩 섞인 말들을 대충 넘겨짚어가며 알아들을 정도가 되었는데 전화로 들으니까 절대 모르겠다. 확실히 바디 랭귀지가....

우리가 일본에 도착했을 때처럼 모리타상, 오하시 센세는 공항까지 함께 했고, 공항에서 아침을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을 먹고 와인 한잔 마시니 금방 잠이 들었으나, 1시간여만에 금방 도착하였다. 실제 비행시간은 2시간, 공항서 집에 돌아가는데는 3시간 10분이 걸렸다. 그리보면 일본은 정말 가까운 나라다. 나의 첫번째 해외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간 일본땅에서 받은 친절과 배려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친근하게 맞아준 일본 젊은이들을 잊지 못할것이고 그들과의 인연의 끈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신경써주신 오하시센세, 모리타상, 다니구지상께 감사드리고 홈스테이로 신세진 아베센세와 마쯔다센세, 그리고 우리를 초청해주신 이사장님과 이하 연구소 모든분들께 감사드린다.

여행을 다녀온건 2001년이며 여행기를 쓴건 2003-04년경, 정작 올리는건 2009년 초가 되어서이다. 지금이나마 안올리면 없어질듯 하여, 03년에 써놓은 부분 꼭 필요한 부분만 손을 보고, 정리해서 올림. 당시 열심히 스캔해놨던 사진은 스캔 직후 절반 이상을 날린 이후로 사진이 많이 부족하네.. 어쩔수 없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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